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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광화 
풀 키워서 거름하기
올해는 농사 규모를 줄였다. 그렇다고 일이 줄어든 건 아니다. 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.

예전에는 풀이 자라기 전에, 그러니까 막 싹이 돋아날 때 김을 맸다. 이렇게 하면 일이 쉽다. 200평 한 마지기 김을 매더라도 한 시간이면 된다. 풀이 어릴 때는 바닥을 호미로 슥슥 긁어주기만 하면 된다.

하지만 지금은 아니다. 되도록 풀을 키운다. 작물을 심을 때만 풀을 베어준다. 이를테면 이제 좀 있으면 수수 모종을 심을 예정이다. 그래서 심을 곳에 밭 정리를 한다.

5월 초 입하, 지금 밭은 개망초는 줄기가 위로 부쩍 올라오고, 지칭개는 팔만큼 자라 꽃봉오리를 맺는다. 그만큼 풀 양이 푸짐하다. 겨우내 움츠렸다가 봄이 오자 광합성을 마음껏 한 결과다. 이 풀들을 베어서 두둑에 깔면 두둑이 웬만큼 덥힐 정도다. 냉이는 어느 새 꽃이 지고 씨앗을 맺는다. 점나도나물도 마찬가지.

그런데 이런 풀을 정리할 때 뽑는 게 아니다. 줄기 밑동을 베어준다. 부추 낫으로. 부추 낫은 톱날이 있는 작은 낫이라고 보면 된다. 풀을 베지만 줄기 밑동을 그것도 되도록 흙 가까이 벨 수 있게 만든 낫이다. 낫으로 이렇게 하려면 흙에 닿아 쉽게 망가진다.

부추 낫이 좋은 이유는 뿌리 때문. 대부분의 식물은 자기키만큼 뿌리를 뻗는다. 부추 낫으로 밑동을 베면서 땅 속 뿌리는 그대로 둔다. 이게 그대로 땅에서 썩으면서 거름이 되고, 뿌리가 자라던 곳은 나중에 물이 잘 스며들게 하는 길이 되니까.

이 농법은 좋은 점이 많다. 거름을 따로 넣지 않아도 되고, 땅이 적당히 습기를 머금는다. 기계를 안 쓰도 된다는 건 아주 큰 장점이다. 풀과 흙이 할 일을 마음껏 하게 한다. 이렇게 하면 밭이 메마르지 않고 항상 풀이나 작물이 있기에 벌레 역시 많다. 지금 뚝새풀은 왕성하게 꽃을 피운다. 꽃다지 꽃은 끝물. 광대나물도 여전히 꽃이 있다. 명아주와 환삼덩굴은 막 싹이 돋아 힘차게 자란다. 이러니 온갖 곤충과 동물이 꼬인다.

덕분에 신비한 밭이 된다. 벌 나비 등에 같은 곤충.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도 많으니 이놈들을 잡아먹는 참개구리는 풀 속에서 쉬다가 김을 매니 놀라서 뛴다. 지렁이가 많으니 땅 속에는 두더지가 수시로 다니다. 이 개구리와 두더지를 노리는 뱀도 이따금 나타나니 사람도 놀라곤 한다.

이렇게 좋은 점, 신비한 점이 많지만 어려운 점은 마냥 느리다는 것. 기계로 하면 한 시간 걸릴 일을 하루 종일해야 한다. 풀이 막 싹이 돋아 자라기 시작할 때 김을 슥슥 맨다면 두어 시간이면 될 일을 몇 시간 더 해야 한다.

시간에 대해, 더 나아가 삶에 대해 그 근원을 성찰하게 된다. 과연 시간이 누구 편일까.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나. 시간과 맞물려 조각난 삶이 아닌 전인적인 삶을 돌아보게 된다. 생명 따로 돈 따로 가 아니어야 한다. 풀 한 포기, 꽃 한 송이, 풀뿌리 한 가닥에서 우주를 볼 수 있어야 한다. 풀을 적이 아니라 정성으로 대해야 한다. 작물처럼. 작물을 잘 돌 본 다음 먹기 위해 뜯듯이 풀 역시 잘 키워 거름으로 쓰기 위해 베어서 깔아둔다. 풀 한 포기 한 포기 밑동을 베면서 고마움을 느낀다.

작물만이 아니라 풀도 바로 우리네 생명이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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